나는 왜 쓰는가
간체 중국어가 죽어 가고 있다
인류의 역사를 통틀어 수많은 언어가 생겨났고, 사람들에게 쓰이다가, 결국 사라졌다.
그리고 지금, 나는 간체 중국어가 죽어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니, 확신한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이 중국어를 더는 말하지 않게 된다거나, 간체 중국어가 사라진다는 뜻은 아니다.
내가 말하는 것은 다른 종류의 죽음이다.
학생 시절, 나는 인터넷 돌아다니기를 좋아했다. 지금과 비교하면 그 시절은 멋졌다. 간체 중국어 세계에는 수많은 웹사이트와 포럼, 온갖 온라인 커뮤니티가 있었다. 인터넷은 지금보다 훨씬 자유로웠다. 온라인에서 중국공산당에 반대하는 생각을 이야기할 수 있었고, 중국어 검색 엔진으로 그런 정보를 찾아볼 수도 있었다.
중국 인터넷 초기에는 Google, Wikipedia, YouTube에 접속할 수 있었다. PPLive도 있었다. 그곳에서 한국 대중음악 프로그램을 보던 기억이 난다. 톈야, 톄바, 그리고 중국어 인터넷 곳곳에 셀 수 없이 많은 포럼도 있었다. 오늘날 중국 인터넷에서는 더 이상 허용되지 않는 수많은 주제를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었다.
심지어 2013년과 2014년 무렵에도 Instagram, WhatsApp, LINE, Telegram 같은 여러 해외 앱을 여전히 다운로드하고 사용할 수 있었다.
이것은 중국공산당이 간체 중국어 세계에 내려 준 선물이었을까?
아니다.
중국공산당은 그저 중국 본토의 자유를 완전히 통제하고 억압할 만한 힘이나 능력이 부족했을 뿐이다. 선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저 사실이다.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 동유럽은 격변을 겪었고 소련은 붕괴했다. 당시 중국은 여전히 가난했고, 중국공산당은 지금보다 훨씬 약했다. 기술적·재정적 자원도 훨씬 부족했다. 통제하고 싶어도 도저히 통제할 수 없는 것이 많았다.
이 시기와 그 뒤의 세월 동안 수많은 인터넷 제품이 만들어졌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 간체 중국어 세계는 어떤 모습이 되었을까?
중국 사람들이 정치나 다른 진지한 주제를 이야기하려 할 때, 때로는 간체 중국어를 그대로 쓰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대신 병음을 써야 한다. 그마저 통하지 않을 때도 있다. 인터넷 서비스가 정보 게시를 막거나, 쓴 글을 삭제하거나, 심지어 계정을 통째로 삭제할 수도 있다.
지난 세월 동안 엄청난 양의 간체 중국어 정보가 만들어졌다가 전체주의 때문에 사라졌다.
나는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을 여러 번 보았다.
오늘날 간체 중국어 세계에서 중국 내 운영이 허용된 모든 웹사이트와 앱은 사실상 중국 정부의 통제 체계 일부가 되었다. 동시에 이런 서비스에 있는 정보의 상당 부분은 외국 전화번호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접근이 불가능하다.
그 결과, 간체 중국어 인터넷은 세계의 나머지 부분과 고립되어 가고 있다.
나는 공산주의 국가에서는 기억 자체가 불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을 면밀히 살펴보면, 소련 시대의 실제 일상생활에 관한 기록이 제정 러시아 시대보다 적다는 것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같은 일이 간체 중국어 세계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사람들은 백 년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중국의 개혁개방 이전 사회가 실제로 어떤 모습이었는지 모른다. 심지어 2020년부터 2022년까지의 기억마저 잃어 가고 있다. 마치 봉쇄가 한 번도 없었던 것처럼.
『1984』에 나오는 당의 구호 중 하나는 이렇게 말한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한다.”
불법이 될 수 있는 것은 생각만이 아니다.
기억도 불법이 될 수 있다.
어떤 언어의 생태계가 죽어 가고 있다면, 그 언어 자체도 죽어 가고 있는 것이다. 간체 중국어는 지금 그런 상황에 놓여 있다.
나는 언어에는 깊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쓰고, 토론하고, 만들고, 기록하는 것들이 그 깊이의 일부가 된다. 그것은 사람들이 남기는 것이다. 그들이 이곳에 있었다는 증거다.
그런 것들이 계속 사라지면, 언어는 점점 더 얇아진다.
엔지니어로서 내가 눈여겨본 것이 하나 더 있다.
자유로운 인터넷은 본래 결합이 느슨하다. 사람들은 자신만의 웹사이트, 포럼, 커뮤니티, 제품을 만들 수 있다. 그것들은 서로 독립적으로 성장하고, 변하고, 실패하거나 사라질 수 있다.
검열은 정반대 방향으로 작동한다.
검열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만들어 내는 것과 그것에 접근하려는 사용자 사이에 끼워 넣은 거대한 미들웨어 계층과 같다. 무엇이 사용자에게 도달해도 되고, 무엇은 안 되는지 결정하려 한다.
점점 더 많은 제품, 커뮤니티, 표현 방식, 예외적인 경우가 나타날수록 이 미들웨어도 함께 커진다.
그것은 거대하고 혼란스러운 결합 계층이 된다.
검열은 기술 부채가 된다.
그리고 생태계 전체가 그 부채의 이자를 계속 치러야 한다.
한 언어 안의 정보, 기억, 논쟁, 기록, 그 밖의 모든 것이 계속 사라지면, 남는 것은 얇은 표면뿐이다.
그 표면은 점점 더 얇아진다.
이야기 하나를 해 보겠다.
어릴 때, 어른들은 1980년대와 1990년대의 중국 사회가 훨씬 더 개방적이고 자유로웠다고 말해 주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 시대를 직접 살아 본 적은 없었다.
세월이 흘러 나는 어른이 되었고 일을 시작했다.
그러다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나보다 어린 학생들이 내가 젊었던 시절에 관해 내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우리 세대가 얼마나 운이 좋았는지 이야기했다. 그때는 Google을 쓸 수 있었고, 세계 인터넷의 많은 부분에 직접 접속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들에게는 내가 젊었던 시절의 인터넷이 자신들이 자라며 접한 인터넷보다 훨씬 자유로워 보였다.
그리고 문득, 같은 이야기 속에서 내가 어느새 윗세대가 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시대가 더 자유로웠다고 내가 그들에게 말한 것이 아니다.
그들이 내게 말해 주었다.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1980년대와 1990년대의 더 자유로웠던 중국은,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기억을 통해 내가 알게 된 것이었다.
이제는 내가 직접 겪은 더 자유로웠던 인터넷도 기억이 되어 가고 있다.
한 시대의 기록이 사라지면, 생생한 과거는 서서히 이야기가 된다. 한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들려주는 무언가가 된다.
언어가 얇아진다는 말은 바로 이런 뜻이다.
한때 존재했던 것이 기억이 된다.
그러고는 그 기억마저 사라지기 시작한다.
그래서 나는 몇 가지 진실을 글로 남겨 미래의 사람들을 위해 보존하고 싶다.
이것이 내가 쓰는 이유다.
이 글은 조지 오웰의 『나는 왜 쓰는가』에 바치는 헌사다.